주제:9급 영어 (안내문)
12월 첫 금요일 (오후) 2시였다. 우체국 유리문에 하얗게 김이 서려 있었다. (아침) 뉴스는 몹시 (추운) (하루) 가 될 거라고 했다. 창밖 햇빛만 (저울) 위를 비추고 있었다.
나는 정다은, 스물여섯 살, 우체국 우정직 9급이다. 국제 소포 창구에 (앉은) 지 넉 달째다. 연말이면 해외로 가는 옷 상자가 하루에 백 개를 (넘는다) . (유행하는) 패딩부터 (손뜨개) 장갑까지 다 온다.
36번은 동네 (미용사) 였다. 캐나다에 사는 딸에게 (정장) 한 벌을 보냈다. 딸이 첫 출근 날 입을 옷이라며 (옷장) 에서 제일 좋은 것을 (골랐다고) 했다.
37번은 곱슬머리의 남자분이었다. 짧은 (턱수염) 에 (편한) (운동화) 차림이었다. 그는 상자를 저울에 올리고 천천히 말했다.
“안녕하세요. 저는 바야르예요. 몽골에서 왔어요. 동생이 결혼해요. 울란바토르로 보내고 (싶어요) .”
“축하드려요. 안에 든 물건을 (같이) 한번 볼게요.”
상자는 가득 채워져 있었다. (맨 위) 에는 동생이 결혼식에서 (입을) 하얀 예복이 접혀 있었다. (소매) 끝의 (꽃무늬) 는 몽골 전통 문양이라고 했다.
“동생이 서울에서 입어봤어요. (어머니) 가 우아하다고 했어요. 결혼식 날은 다들 차려입어요.”
그 (아래) 에는 아버지께 드릴 (회색) 스웨터와 (넥타이) 가 있었다. 어머니가 쓰실 한국 (린스) 도 두 병 들어 있었다.
구석에는 신문지로 싼 (꾸러미) 가 둘 있었다. 아버지가 쓰던 (강철) (면도칼) 과 구두 광택제 한 통이었다.
“이건 동생 거예요.” 바야르 씨가 (작은) (상자) 를 열었다. 초록빛 (비취) (목걸이) 였다. 줄 끝에 매달려 있는 하얀 장식이 형광등 아래서 (빛났다) .
(그때) 옆 (창구) 의 엄태식 주무관이 이쪽으로 몸을 숙였다. (국제) 우편 7년 차, 창구에서 (손) 이 가장 빠른 사람이다. 그는 하얀 장식을 보자마자 고개를 저었다.
“이거 (확실히) (상아) 예요. 상아는 해외로 못 보내요. 면도칼에 광택제까지 있고요. 이 상자는 (통째로) (반송) 이에요.”
바야르 씨가 (본능적으로) 목걸이 상자를 손으로 감쌌다. 엄 주무관은 반송 (이유) 를 적는 (종이) 를 내 쪽으로 밀었다.
“주무관님, (규정) 을 (끝까지) 한번 보면…….”
“다은 씨는 소포나 (받아요) . 9급이 규정을 뭘 (안다고) 그래요.”
(목소리) 가 대기석까지 들렸다. 바야르 씨가 (불안하게) 상자 (모서리) 를 만졌다. 말을 다 알아듣지는 못해도 ‘반송’이라는 (단어) 는 아는 얼굴이었다.
“잠깐만 (기다려 주세요) . 제가 규정을 확인할게요.”
“네. (괜찮아요) . 저는 (시간) 있어요. 천천히요.”
나는 국제 특송 규정을 화면에 띄웠다. 올해 바뀐 (내용) 이 반영된 (판) 이었다. 몽골행 항목은 네 (쪽) 이었다. 첫 쪽은 접수 금지 (물품) 이었다. (살아 있는) 생물과 (흙) , (씨앗) 은 (받지 않는다) . 다른 나라의 생태계를 (지키기) 위해서다.
상아처럼 보호종에서 나온 (물건) 도 첫 쪽에 있었다. 둘째 쪽은 항공 위험물이었다. 불이 붙는 (액체) 와 (스프레이) 는 비행기에 실을 수 없다. 깨지기 쉬운 물건은 (이중의) 상자로 (포장해야 한다) .
셋째 쪽은 겨울철 (지연) 안내였다. (폭설) 이나 (낙뢰) 때문에 항공편이 멈추면 도착이 이틀쯤 늦어질 수 있다고 했다. (의복) 과 섬유 제품은 따로 제한이 없었다.
(핵심) 은 마지막 쪽 맨 아래 두 줄이었다. “ (재질) 이 (분명하지 않은) 물품은 판매처 (보증서) 를 기초로 판단한다. 금지 물품이 섞인 소포는 그 물품만 (제거하고) 나머지를 접수한다.”
(통째로) 반송할 일이 아니었다. 뺄 것만 빼면 되는 일이었다.
“바야르 씨, 목걸이 (살 때) (받은) 종이가 있으세요?”
그가 (지갑) 에서 (접힌) 보증서를 (꺼냈다) . 울란바토르 보석 가게의 직인이 찍혀 있었다. 하얀 장식은 상아가 아니라 흰 옥이었다. 무게와 (산지) 까지 (적혀 있었다) .
광택제 통의 (뒷면) 도 확인했다. 작은 글씨로 ‘인화성 (물질) , 불 가까이 두지 마십시오’라고 적혀 있었다. 이것만은 비행기에 실을 수 없었다.
“이건 보낼 수 없어요. 불이 붙을 수 있어서요. (나머지) 는 (다) 보낼 수 있어요.”
바야르 씨가 (길게) 숨을 내쉬었다. “아, (다행) 이에요. 광택제는 (순전히) 제 생각이었어요. (아버지) 는 (아직) 몰라요. 괜찮아요.”
나는 목걸이를 완충재로 (두 번) 감쌌다. 작은 상자를 (큰) 상자 안에 넣고, (빈틈) 은 신문지 덩어리로 메웠다. 상자 모서리에 난 작은 (구멍) 은 테이프로 (막았다) .
조카에게 줄 기린 (인형) 은 (예복) 옆에 눕혔다. 바야르 씨는 조카가 (동물원) 에 다녀온 뒤로 기린 이야기만 한다며 (웃었다) .
그사이 엄 주무관이 자기 (손님) 을 보내고 자리를 (떠나) 내 쪽으로 (왔다) . 콧수염을 (쓸어내리며) (화면) 과 보증서를 번갈아 봤다.
“그거 반송이라니까요.”
“마지막 쪽에 그 (물품) 만 빼고 접수한다고 나와요. 이건 (가게) (보증서) 고요.”
나는 차분하게 말했다. (화면) 을 그쪽으로 조금 (돌렸을 뿐이다) . 엄 주무관은 마지막 쪽을 한참 읽었다. 보증서의 직인을 손끝으로 (짚고) , 광택제 통도 들어 뒷면을 확인했다.
대기석의 (손님) 몇 명이 이쪽을 봤다. 엄 주무관이 바야르 씨 앞에 (똑바로) (섰다) .
“ (아까) 소포나 받으라고 한 말은 취소할게요. 제가 (첫) 쪽만 보고 (판단했어요) . 바야르 씨, 놀라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.”
바야르 씨는 (손을 저으며) (고개를 끄덕였다) . “아니에요. 다들 (친절해요) . (꼼꼼해서) 좋아요.”
엄 주무관이 나를 (돌아봤다) . “앞으로 몽골행 (소포) 는 다은 씨가 (먼저) 봐 줘요. 규정이 (바뀌면) 나한테도 (알려 주고요) .”
“네. 마지막 쪽부터 (볼게요) .”
엄 주무관은 (자기)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. (그리고) 규정 파일을 처음부터 (다시) 열었다.
(송장) 을 출력하자 바야르 씨가 도착 예정일을 들여다봤다. 화요일이었다. (결혼식) 은 그 (주) 토요일이다.
“울란바토르는 지금 영하 30도예요. (겨울) 이 매우 길어요. (강) 도 다 얼었어요. (봄) 이 되면 녹아요. 시냇물 소리가 나요.”
“결혼식 (사진) 은 어디서 (찍어요) ?”
“산꼭대기에서요. (해돋이) 볼 때요. 거기서 보면 (지평선) 이 아주 길어요.”
그는 휴대전화로 (고향) 사진을 (보여 주었다) . 끝없는 초원 위에 하얀 (텐트) 몇 채가 그림 같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.
“ (기억에 남는) 결혼식 되길 (바라요) .”
나는 광택제 통을 작은 (봉투) 에 (넣어) 바야르 씨에게 돌려 드렸다. 상자에 테이프를 (한 번) 더 두르고, (무게) 4.2킬로그램을 송장에 적었다. 호출 (버튼) 을 누르자 화면에 38번이 떴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