(주제) :9급 영어 공문
(월요일) 오전 9시, 교육지원청 1층 민원실에 첫 (번호표) 가 떴다. 대기석에는 취학 통지서를 든 학부모들이 (앉아 있었다) . (개학) 을 2주 앞둔 아침이었다.
나는 윤채원, 스물일곱 살이다. 교육지원과에 온 지 넉 달 된 9급이다. (현재) 내 (업무) 는 학교로 나가는 공문을 접수하고 발송하는 일이다. 하루에도 (수많은) 공문이 이 책상을 (지나간다) . (출근) 하면 어제 들어온 공문부터 날짜순으로 (정리) 하고, (필요 없는) 사본은 파쇄함에 버린다.
옆자리 강민혁 주무관은 (원어민) 영어 보조교사 (배치) 를 맡고 있다. 올해로 6년째라 학교 이름과 학생 수를 (거의) (암기하고) 있다. (회의) 때마다 그걸 조금 자랑한다.
(점심시간) 에는 꽤 (수다스러운) 사람이다. 업무 얘기가 나오면 (자신감) 이 넘치고 말이 빨라진다.
“채원 씨, 이번 주 공문 (목록) 좀 뽑아 줘요.”
“주무관님, 배치 계획 초안 저도 (한번) 읽어 봐도 될까요?”
“9급은 공문만 돌려요. (배치) 는 (복잡해서) 내가 해요.”
(말투) 는 (가벼웠지만) 뜻은 명확했다. 나는 (웃으면서) 고개를 끄덕였다. 솔직히 조금 실망했다.
10시쯤 3번이 불렸다. (키가 큰) 남자가 창구 앞에 섰다. (목) 에는 출입증을 (걸었고) , 손에는 종이 한 장을 (꽉) 잡고 있었다.
“안녕하세요. 저는 에이든이에요. 뉴질랜드에서 (왔어요) . 읍내 (초등학교) 영어 (강사) 예요.”
그는 (한) 단어씩 천천히 (말했다) . 한국에 온 지 두 해째라 이제 존댓말이 익숙하다고 했다.
“지난주에 분교에 (갔어요) . (산) 쪽, (가장 먼) 학교요. (아이들) 이 열한 명이에요. 정말 열정적이에요. 근처에 (학원) 이 없어요. 아이들이 (물어봤어요) . 선생님, 우리 학교에도 와요?”
종이는 (분교) 아이들이 (쓴) (편지) 였다. 운동장 (옆) (헛간) 을 고친 (작은) (도서실) 이 크레파스로 그려져 있었다. 색종이를 오려낸 별도 여러 개 붙여 놓았다. 맨 아래에는 열한 명의 이름이 서로 다른 색으로 적혀 있었다. 그 그림은 내가 다닌 시골 학교를 생각나게 했다.
“아이들한테 (약속했어요) . (교육청) 에 (꼭) 물어보겠다고요.”
강 (주무관) 이 (의자) 를 돌렸다.
“에이든 씨, 분교는 배치 대상이 아니에요. (학생) (수) 100명 이상인 학교만 돼요. 일반적으로 그래요. 한 사람을 두 학교로 나누면 (수업) 도 (반으로) (줄고요) .”
에이든 씨는 난처한 (얼굴) 로 편지를 (내려다봤다) . 넓은 어깨가 조금 처져 보였다.
“채원 씨, 분교에 (불가) 공문 하나 (정중하게) 만들어 줘요.”
(본래) 배치는 내 (일) 이 아니다. 그래도 불가라고 쓰려면 (근거) 조항을 적어야 했다. 나는 공문 (양식) 보다 배치 계획 파일을 (먼저) 열었다. 목차는 11쪽까지인데 파일은 12쪽이었다. 그게 (이상했다) .
(앞쪽) 은 아는 (내용) 이었다. (원어민) (교사) 는 한 학교에서 주 5일 근무하는 것이 원칙이다. 학생 수가 많은 학교를 우선하고, (이전의) 배치 (실적) 도 본다. 계약은 1년 (단위) 이고, (단기적인) 대체 근무는 따로 (정한다) .
8쪽은 수업 (운영) 이었다. 원어민 교사는 (정규) 영어 수업에 의무적으로 들어간다. 정규 수업 (뿐만 아니라) 방과 후 (강의) 도 학교가 신청할 수 있다. 숙소는 교사의 (적응) 을 (배려) 해 근무 학교에서 30분 안으로 정한다.
12쪽 맨 위에는 ‘ (개선된) 배치 (기준) ’이라는 (제목) 이 있었다. 단락은 하나뿐이었다. 나는 (손가락) 으로 줄을 (따라가며) 읽었다.
“최근 소규모 학교가 증가함에 따라, (가까운) 학교를 하나의 (집단) 으로 묶어 (운영) 할 수 있다. (본교) 와 분교는 한 학교로 보며, 이 (경우) 학생 수와 관계없이 배치 대상으로 본다. 작은 학교 학생에게도 같은 수업을 (제공) 하기 위해 주 1회 (순회) 수업을 허용한다.”
(전산) 에서 분교를 (조회했다) . 에이든 씨가 근무하는 읍내 초등학교 (소속이었다) . (사실상) (같은) 학교였다. 분교도 이 계획에 포함되는 것이다.
“에이든 씨, 잠깐만요. (확인해야) 할 (게) 하나 있어요.”
“네. 여기서 (기다릴게요) .”
12쪽을 (인쇄해) 강 주무관 책상에 (올려놓았다) . 말을 꺼내는 데 (용기가) (조금) 필요했다. 나는 (호흡) 을 한 번 고르고 침착하게 (말했다) .
“주무관님, 마지막 (쪽) 좀 봐 주시겠어요? 올해 (새로) 들어간 단락이에요.”
그는 처음엔 (대충) (훑었다) . 그러다 모니터 쪽으로 (몸) 을 숙였다. 이번에는 한 줄씩 (면밀히) 읽었다. 작년 계획서를 옆 (창) 에 띄우고 두 (파일) 을 번갈아 봤다. 작년 파일에는 그 단락이 (없었다) . 결국 (차이는) 그 한 쪽이었다.
옆 (창구) (직원) 둘이 이쪽을 봤다. 대기석의 (학부모) 몇 명도 (고개를 들었다) . 강 주무관은 종이를 들고 일어나 창구 앞으로 나왔다. 그리고 그 단락을 (소리 내어) (읽었다) .
“채원 씨, 아까 공문만 (돌리라고) 한 말은 (취소할게요) . 작년 (계획) 만 믿고 끝까지 안 읽었어요. 에이든 씨, 제가 (잘못) 안내해 드렸어요. (죄송합니다) .”
에이든 씨가 두 손을 (저었다) . “아니에요. (정말) 감사해요.”
마침 지나가던 과장님이 종이를 받아 읽었다. “장기적으로 보면 (이런) (학교) 가 더 (늘) 거예요. 작은 학교 아이들한테도 바람직한 일이고요. (다른) 분교들도 (마찬가지로) 확인해 봅시다. 내년 계획에는 이 단락을 앞쪽에 (강조해서) (넣읍시다) .”
강 주무관이 나를 돌아봤다. “ (목요일) (오후) 를 분교 (순회) 수업으로 (잡죠) . (배치표) 는 채원 씨가 고쳐 줄래요? 이건 채원 씨한테 맡길게요.”
나는 목요일 칸을 (반으로) (나눴다) . 오전은 읍내 초등학교, 오후 2시부터는 분교였다. 에이든 씨가 (화면) 을 (볼 수 있게) 모니터 (각도) 를 돌렸다.
“산길로 40분이에요. 괜찮으시겠어요?”
“걱정 마세요. 저 (운전) (잘해요) . 아이들하고 영어 노래를 연습할 거예요. 2월 (졸업식) 에서 다 같이 불러요.”
그날 오후, 나는 (정말로) 공문을 돌렸다. (받는 곳) 에 분교 이름이 (들어간) 공문이었다. 아이들 편지를 (스캔해) 첨부하고, (발송) 버튼을 (눌렀다) . 그리고 다음 번호표를 불렀다.